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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칼럼

제목

정신분석, 이 뭣고(4); 이순신 장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1.03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5637
내용
<수필전문지, 에세이스트 9월호 연재물>

정신분석, 이 뭣고(4)


애국의 길

요즘 ‘성웅 이순신’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아무리 들추고 칭송해도 식상하지 않는 불멸의 영웅, 그 비결은 무엇일까. 광복 60주년을 맞은 싯점에서 그를 조명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겠다. 사극 ‘불멸의 이순신’이 시작되고부터 나는 관심을 가지고 시청하였다. 벌써 100회 방영이 지났고 대단원의 끝이 가까워 온다. 광복절이 있게 한 태평양 전쟁의 괴수 도죠의 망상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그 선조 히데요시의 망상, 대물림의 역사를 이었기 때문에 광복절의 임진왜란은 새삼스럽지만 신선한 주제가 될 것이다. 한 사람의 망상이 왜는 물론 조선을 황폐화하고 명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하였다. 한 인간의 이기적 야망이 얼마나 큰 죄업을 짓는가.

1592년, 정확히 413년 전, 그의 선단은 한반도를 침략하였다. 이순신장군은 그 일년 전부터 침략에 대비한 전략을 구상하였고, 마침내 23전 23승! 세계 해전 사상 불멸의 전과를 거두었다. 그 전투 하나, 하나가 혈전의 역사였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전승 기록을 기림은 물론이거니와 장군의 백성 사랑과 충정의 정신, 역사상 가장 멋진 CEO의 긍정적 정신을 보기 때문에 열광한다. 영웅으로 그리는 드라마 속에서 그를 숭배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23전 전승 기록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그의 인생 ‘지금, 여기에서’ 발생되는 갖가지 난관들을 극복하는 과정을 너무나 실감나게 느끼게 되었다.

강인한 자의 뒤에는 언제나 위대한 부모가 숨어 있다. 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듯. 어머니를 먼저 여의고, 왜군에게 아들 면을 잃고서도 장군은 흔들리지 아니한다. 비정하다고 보이는 강인함, 그것은 절로 터득된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할아버지가 기묘사화에서 역모로 몰렸기 때문에 아버지는 벼슬에 나가지 않았고 집안은 가난하였다. 소년시절 외가인 아산으로 이사하고 어린 시절부터 서당에서는 역모의 자식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순신은 겁쟁이 소년이었다. 소년시절 형뻘인 원균을 만나서 끈질긴 인연은 계속되었고, 그의 사춘기에서 청년기에 이르는 시간은 참담한 고생의 연속이었다. 상단에서 막일꾼이 되기도 하고 사기를 굽는 제자가 되어 무예를 익히기도 하였다. 무과에 급제하는 과정도 시련의 연속이요, 역경은 그에게 미래를 향한 기회로 이용되었다. 그는 타협을 모르고 정의를 사랑하는 성격으로 성장하면서도 인정으로 남을 배려하는 청년이 되었다. 오로지 정의에만 순응하는 정심, 젊은 시절에는 오랑캐로부터 위화도를 지켜서 공을 세우고, 나이 들어서는 남쪽에서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어서 왜적을 물리친다. 옳지 않다고 판단되면 임금의 명도 거역하였으니, 안타깝게도 마침내 역적으로 몰린다. 정의에 대한 강박은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아버지의 성품에서 연유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그의 인생에서 스무 번째 해전, 울돌목(명량) 해전은 특별히 중요해 보인다. 적함은 3백 척이요, 아군의 남은 함대는 겨우 12척, 백의종군에서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에 오른 장군의 심신은 피폐하였으나, ‘남은 함대가 열두척이나 있다’고 말하는 긍정적 자세였다.
심리적 내면에서 본능적 삶의 욕망, 질투 그리고 현실에 적응하려는 기제, 적응의 결과를 시비하는 도덕심; 도덕-현실-본능의 삼각구도를, 전란 상황 속에서 나오는 인물들과 비유하여 생각해 보았다. 이 해전을 전후로, 한 인간의 내면이 역동적으로 갈등하는 모습과 전투상황의 당시 인물들의 갈등 상황이 유사하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으므로 아래와 같이 비유하여 본다.
(1) 도덕적 자아상(백성의 어버이); 임금, 선조
(2) 현실적 자아상(나라를 구하는 인물); 이순신 장군과 주위 인물
(3) 본능적 자아상(명령을 따르는 인물); 군졸과 백성.
우리의 일상이 매일 전투가 아닌가, 왜군과 명군의 횡포를 맞은 백성들은 본능적으로 산속으로 도망하고 굶어주고 울부짖었다. 징병 포고를 받자 다투어 달아났고, 날로 백성들의 세상은 지옥이 되었다. 굶주리어 부자가 서로 잡아먹고, 부부가 잡아먹고, 명나라 군사가 술에 취하여 토하면 주린 백성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틀어박고 빨아 먹었다. 힘이 없는 자들은 뒷전에서 울었다. 살을 에이는 추운 날, 옷 없는 병졸들은 추위에 떨었다. 군량미는 오지 않았다. 기록들은 인간이 먹거리가 없을 때 얼마나 처참해 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본능적 자아는 배고픔에 반응하는 즉물적 추구 밖에 없다. 본능은 쾌락원칙에 의해 움직이니까.

신하 이순신과 임금 선조으로 관심을 돌려보자. 백성의 어버이는 이미 의주까지 몽진을 겪었고, 왕자를 왜군에게 나포 당한 처지였다. 오랜 전란에 겁에 질린 임금은 만성 스트레스로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성정은 약하고 소심하며 투사적, 면피성 판단을 하고, 불안하여 그 책임을 신하에게 전가한다. 이순신에게 향한 백성들의 인기에 엄청난 질투를 느끼고 있어 패전의 책임을 그의 탓으로 투사한다. 공포로부터 해방될 계책, 자신의 훌륭한 전략(내용인즉 적의 계략)을 시행하지 않는 이순신이야말로 역적이라고 판단하는데, 주군이라기보다는 피해망상에 빠져 극도의 불안에 빠진 편집증 환자를 연상케 한다. 첫째 피해의식의 미숙한 도덕, 자학적 처벌의 결과는 참혹하다. 지도자를 잃은 수군은 대패, 충성하는 신하들도 죽고 함대 300여척은 전멸된다(임금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충성, 그 속에는 명예욕과 질투의 합리화를 함유하고, 심리적 역동으로는 부모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선조는 독백하기를 ‘과인은 본래 자비로운 사람이야. 그가 죽으면 제주祭酒나 한 잔 부어 주어야지.’ 한다. 그리고 실제로 자비(죄책감을 더는 취소행위)를 베푼다 - 군왕을 기망한 죄, 적을 앞두고 나아가 물리치지 않아 죄가 깊다, 허나 지난 전공을 참작하여 용서하니免死 백의종군하여 죄를 씻으라.(선조의 독백에서 정신 방어 기제, 곧 ‘나는 선하고 나쁜 것은 너’ 라고 투사하는 모습의 전형을 본다, 이 기제는 흔히 미숙한 어린이, 정신병으로 퇴행한 사람들이 즐겨 쓰는 방어) 멀쩡한 중년의 임금이 이런 바보스런 판단을 하고 있는 모습은 병적 모습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둘째 임금과 장군의 관계는 역활전도가 보인다. 무시로 내리는 교지는 임금의 장군에 대한 격려의 형식을 띄지만 내용은 자기탄식과 숨겨진 의존욕구를 보인다. 임금은 교지를 내림으로써 안위를 얻는다. 전장의 지도자는 장군이다. 그래서 긴으적으로 서로의 역활은 바뀌고 있다. 어느 쪽이 지도자인지 의심된다. 비합리적인 명령을 내리고 순명치 안했다고 (의존심이 좌절되어) 적개심과 피해의식으로 전환된다.

-이순신을 털끝만치도 용서해 줄 수 없다.... 무장으로써 어찌 조정을 경멸히 여기는 마음을 품을 수 있는가?(선조실록,19571.27).

얼마 전 나는 두 번째 외손자를 보았다. 착하기 그지없던 첫째가 심술이 늘어서 엄마가 너무 고생이 많다. 엄마의 사랑을 빼앗긴 아이의 본능적 자기방어가 바로 ‘정서적 퇴행’ 이다. 오줌을 잘 가리던 아이가 아우를 보면 오줌싸개가 되는 현상이다. 경쟁과 질투의 갈등은 어린 시절 순신과 원균 사이에도 있었고 후일에도 지속된다. 백성의 사랑을 빼앗긴 선조가 장군을 미워하는 것도 이런 이치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장군은 주리를 틀리고 당근질을 당한다. 이런 상황과 수법은 근세 수십 년 대한민국 정권의 행태에서 보아온 모습들과 너무 닮았다. 장군은 희생양의 운명을 타고 났다. 전쟁에 승리하여도 당리에 어두운 서인들의 질투, 간신배들와 군주의 정략으로 인하여 그는 희생될 운명이다. 그는 그것을 알면서도 ‘영원히 살기 위하여‘ 운명을 회피하지 않는다. 의義에 죽을 수 있는 무장의 기상이다. 이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한 예수나 쟌다크와 같은 이타주의적 자기희생정신‘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성웅聖雄‘으로 불러야 하는 당위를 얻는다. 구약 성서 속의 선지자 예레미아도 불란서를 구한 쟌다크도 개인적 운명은 불행의 종말이었다. 장군의 의연한 몸짓은 어디서 유래할까. 아마도 어린 시절의 충분한 사랑, 사춘기의 호된 고생과 시련, 유학과 무예 수련이 종합된 문무 겸비의 정신에서 온 것이 아닐까. 바꾸면 표현하면 성숙한 도덕(철저한 윤리)과 성숙한 현실감의 조합이다.

선조가 병이 아니었다면 고도의 어떤 전략가였을까? ‘정치란 그 전략의 방도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알 수가 없다’ 던 어떤 저널리스트의 말이 떠오른다. 선조도 처음부터 유약한 임금은 아니었다. 즉위 초반에는 조광조를 등용하여 개혁을 시도하기도 하였지만 대가 약한지라 당파분쟁을 이겨내지 못하고 역모의 공포에 시달리는 심약한 군주가 되었다. 당시의 내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가늠케 한다. 어쨋거나 장군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일본의 지도가 한반도의 상당 부분을 포함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이미 퇴진하는 왜와 명군 사이에는 그런 밀약이 있었기 때문에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죽음으로 그 밀약을 깨뜨리지 않았더라면 밀약은 우리의 뜻과는 무관하게 효력을 발휘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의 많은 지도자들이 떠오른다. 현군은 적고 문제 임금은 많았기에 ‘역사의 흐름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명제를 연상한다. 역사의 흐름에 정의 같은 게 있는가. 최근 한 신문의 리서치에서 나온 보도는 오늘의 젊은 세대들이 남북통일을 원하기는 하지만 부담이 늘어나는 자기들 세대에는 희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백성들의 심리도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겉모습이 다를지라도 자기보존의 본능적인 면은 다르지 않을 터이다. 문제해결은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 심리적 투사형 지도자를 만나는 세대는 그 잘못되는 부담이 모두 어질고 착한 민초들의 몫이 된다.

장군의 의연한 태도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백의종군을 하고도 주군을 원망치 아니하고, 다시 명을 받고 군문에 임하는, 유교정신의 모범적 무신상을 본다. 충과 효의 심리분석은 ‘잠재적 적개심과 그 죄책감의 보상으로 인한 헌신’으로 설명한다. 실제 현실적 인간으로써 이순신은 그렇게 과묵한 도인적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인내하였을까. 혼잣말이라도 임금에 대하여 분노를 삭이는 욕설을 뱉지는 않았을까. 힘없는 조정과 도와주지 않고 실리만 챙기는 명군에 대한 적개심을 참느라 불면의 밤이나 편두통의 고통은 없었을까.

분노와 정신건강

적개심을 표현하는 능력과 정신건강의 관계는 매우 흥미로운 관계에 있다. 왜냐하면 적개심의 완벽한 억압과 승화에서 증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그 완벽에 가까운 모델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라면 그는 진정 성숙한 인물이다. 적개심의 억압이 불완전할 때는 불안, 우울, 공포, 건강염려증 등의 신경증(노이로제), 두통, 속 쓰림 같은 신체형 장애도 일어난다. 분노가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사례는 성격장애나 정신병 증상에서 볼 수 있다. 심약한 사람은 알콜에 의지하여 만취 상태에서 억압된 적개심을 폭력이나 파괴로 들어낸다. 본능적 자아의 충동성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하면 파괴적 경향을 제어하기 어렵다. 폭발은 충동적 혹은 서서히 자학/가학적으로 나타난다. 알콜중독을 ‘만성자살’ 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장군은 임진년 10월 초순부터 어지럽고 몸이 불편하여 혼자서 신음하는 밤들이 많았다. 적의 탄환이 왼쪽 어깨뼈에 박혀서 탄알을 빼냈고, 언제나 갑옷을 입고 있으므로 곪아서 진물이 흘러내리기도 하였다. 얼마나 많은 밤들을 고독과 분노, 고통으로 괴로워하였을까. 펑펑 울고 싶을 때는 종의 집을 찾아서 은밀히 홀로 맘놓고 울었다. 삭탈관직되고 어머니의 영구를 모시고 집으로 갈 때 억수로 비를 맞았다. 이때 오로지 ‘어서 죽기를 바랐다’고 일기에 썼다. 아들을 베인 왜군을 눈앞에 놓고 ‘죽이나 살리나’를 고민하다 단 칼에 베기도 한다(칼의 노래, 김훈).

소설가 손창섭이 복수하는 모습이 생각난다. 일본에서 지내던 어려운 유학 시절, 영어 시간에 문제가 일어났다. 손창섭은 영어단어 하나가 잘못됐다고 질문했고, 자꾸 따지는 그에게 사전을 봐라 했는데 그는 ‘사전도 잘못됐다’고 말하여 분노한 스승은 그에게 뺨을 때렸다. 그는 격노하였고 어찌 복수할까 고민하다가 선생의 딸을 유인하여 성폭행하였다. 그녀는 집에서 쫏겨나, 운명적으로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는 일찍이 어머니에게 배신당한 아픔으로 언제나 그에게 아픔을 주는 자에게 복수의 칼날을 가는 음울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만성 우울의 인생이었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은 모두 작가를 닮아 있어서 자학/가학적 삶들이다. 유치한 도덕심은 순진하고도 잔인하다. 성적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정신분열증 환자가 무자비하게 음경을 절단, 자기 처벌을 하는 심리가 그러하다. 손창섭이 소학교 시절 어머니의 외도를 훔쳐보다 어머니에게 들킨 후 ‘칵 목매달아 죽어삐라’는 욕을 듣고는 실제로 목을 매다는 모습도 그렇다.

나는 진찰실에서 매일 두통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들에게서 흔하게 분노를 탐지할 수 있다. 소위 ‘신경성, 긴장성 두통 혹은 편두통’ 환자들이다. 때로 신통력 있는 질문으로 마음속 응어리가 열리기도 한다. 미움이 일으키는 자율신경의 변화, 긴장은 교감신경계를 긴장시켜 혈압도 오르고 가슴이 뛰고, 목 근육을 굳게 하여 통증을 유발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들이다. 심인성 두통 환자들의 공통 특성은 ‘남에게 말을 않고 참는 사람’ 이다. 표현되지 않은 통증은 몸속으로 들어가서 증상을 유발한다. 완벽한 억압에는 뚜렷한 자아정체성의 확립, 건강한 인생관, 성숙한 정신방어 기제가 요구된다.

큰 바위 밑으로 삐져나오는 여린 식물의 생명력을 보면, 억압되는 분노는 쉽사리 조정될 수 없는 ‘여리지만 강한 생명력이 있음’을 알게 한다. 여린 줄기가 살아나려 하듯이 인간은 분노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며 적응한다. 단순한 억압과 부정, 투사는 정신병 환자들이 쓰는 방어요, 억압, 부정, 합리화 등은 신경증 환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기제이다. 억압과 승화, 타인을 지향하는 애타심은 성숙한 사람들의 기제이다. 장군의 백성 사랑, 주군에 대한 충성, 직무에 대한 상무정신은 정체성이 뚜렷하고 인생목표가 분명한 가치관을 의미한다. 울돌목 해전을 앞두고 전세 불리를 알고 도망가는 병졸, 수장도 있었다. 공포에 질린 약삭빠른 자의 본능이다. 장군을 따르는 많은 군졸들은 장군의 가치관에 동화되어서 의를 향한 죽음에 도전하는 자세를 선택하였다. 장군의 생애를 통하여 완벽한 억압을 위해서는 ‘인생에 대한 확실한 긍정적 자세’가 필요함을 알게 한다. 오늘 우리에게 이것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남북의 대화가 남남의 갈등을 야기하고 60년 이전의 상황을 연출하는 요지음의 정국을 바라보는 심경이 답답하다. 희망이 없으면 백성은 절망하는데, 긍정적인 미래를 향한 자세가 요구되는데, 과거사의 집착은 소돔성이 불타는 최후의 순간을 생각나게 한다. 소돔성의 재난을 미리 전하는 천사가 성을 떠날 때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 고 경고하였다. 계시를 들은 롯의 가족들은 절대로 뒤돌아봐서는 안 되었다. 안타깝게도 보통 사람 롯의 아내는 뒤에 남은 재물과 사람들의 아우성이 너무나 궁금하였다. 뒤를 돌아본 순간 그녀는 소금 기둥으로 변했다(구약성경).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과거 지향을 금지’ 하는 하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현명한 군주는...신민들을 결속시키고 충성스럽게 유지할 수 있다면, 잔인하다는 평판을 받는 것을 걱정해서는 안된다.’ 고 하였다. 인기정치에 연연하는 지도자들을 보면서 마음이 갑갑해지는 이유다. 여름밤 주말마다 만나는 이순신 장군은 그런 불면의 열대야를 시원하게 해결해 주었다. 다시 살아난 ‘불멸의 이순신’으로 어수선한 정치, 무덥고 지루한 여름을 청량한 바람을 마시듯 잘 보낼 수 있었으니 너무나 고맙다. 침략군의 필멸, ‘어서 죽었으면’ 하던, 필살즉생의 CEO 이순신 장군, 역전의 기개가 참으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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